캐나다는 매우 다양한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하지만 어쨌든 백인, 특히 영국계가 사회 주류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국계 중심의 사회가 다양성 존중의 나라로 변화되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다. 함께 전장에서 캐나다를 위해 싸웠지만 전쟁이 끝나고 캐나다 사회로 다시 들어오면 보이지 않는 차별과 탄압은 그치지 않았다. 어디에서는 그렇듯이 캐나다에서도 마이너러티 Minority는 그러한 차별과 탄압 속에서 끊임없는 요구와 투쟁을 통해서 오늘날과 같은 권리, 대우, 존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이런 시련의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날과 같은 다양성 존중의 사회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오타와를 여행하다보면 국회의사당 동관 부근에 5명의 여성 동상(The Famous Five) 동상이..
한국전쟁까지 UN의 한 국가로서 참여한 뒤 캐나다는 이제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캐나다만을 위한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국장 Coat of ArmsCoat of Arms이라고 하면 어떤 집단의 특성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그림이나 문자 등으로 표시를 하고 있으며, National Coat of Arms는 국장 또는 나라문장 등으로 표현된다. 유럽처럼 왕가의 전통이 남아 있는 나라들은 좀 복잡한 국장을 많이 갖고 있으며, 이러한 상징을 쓰지 않았던 아시아권 나라들은 좀더 심플한 문양을 갖고 있다. ※ 각 나라의 국장들https://en.wikipedia.org/wiki/National_coat_of_arms 국장을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바로 ..
오늘날 캐나다를 가장 발전시킨 원동력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바로 이민자와 전쟁이 아닐까 싶다. 특히 1, 2차 세계 대전이 유럽에서 일어나면서 비록 자국 국민들의 희생이 있기는 했지만 캐나다 땅에서의 피해는 거의 입지 않고 경제 발전과 기술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1차 세계대전 ■ 전쟁의 시작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형식적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대공 암살이 계기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근과 경기 위축, 영토 분쟁, 민족주의 등 다양한 요인들이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되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과 같은 유럽의 강자들은 이미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어 그 식민지를 통해 자원 공급과 소비가 가능했지만 유럽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독일은 그렇지 않고 고스란히 경기위축의 어려움을 ..
캐나다 역사에서 1880년대는 산업화 시대 Industrialization Age라고 불리어진다. 사람들의 손에 의해 무언가 만들어지는 시대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기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공장 뿐만 아니라 농장에도 새로 발명된 기계들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더 이상 농장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없어짐에 따라 이들은 직업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의 위력이 본격적으로 발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으로 더 큰 기계를 도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큰 소득을 올린다... 기계 덕분에 인건비는 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건 돈이 있는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게 해주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더 가난하게 만드는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토론토와 같은 대도..
철도가 가져온 변화캐나다가 연방국가로 재탄생하면서 이제 본격적인 서부개척의 역사가 진행된다. 미국에서 진행되었던 서부개척의 역사와 유사하게 이제 동부 지역에 있던 많은 영국계, 프랑스계, 미국계 정착민들이 더 좋은 거주지를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철도는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무역거래를 좀더 활발히 만들어줬고, 지방 도시들은 더욱 성장하게 만들어줬으며,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여행할 때도 더 적은 시간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가려면 석달이 걸렸지만 이제는 1~2일 정도면 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훨씬 멀리까지 일하러 갈 수도 있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동부지역에서 중부지역과 서부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철도는 이와..
연방 국가를 위한 협의(Conference)캐나다의 연방국가로서 필요성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었으나 실제로 연방국가로서의 통일은 많은 이권이 달려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각 식민지들의 경우 자치권을 갖고 있고, 시민들의 선출에 의한 책임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당끼리 대결도 만만치 않았다. 또한 Province of Canada (Canada West, Canada East) 만 연방국가에 관심이 많았고 Atlantic Colonies의 4개 식민지들은 연방국가가 되던 말던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연방국가가 된다면 결국 인구수에 따라 의원이 선출되고 의회가 꾸려질텐데 인구수의 경우 Canada West와 East는 각각 140만명, 110만명 정도인 반면, 4개 식..
우리 아이(이제 8학년)의 학교 역사 시험문제지를 보니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게 캐나다 연방국가의 배경에 대해서 서술형으로 쓰는 것이다. 아무래도 캐나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캐나다 연방국가의 탄생이기 때문에 그런 듯 싶다. 내가 이렇게 캐나다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정리하게 된 것도 어쩌면 우리 아이의 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자 같이 교과서를 읽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캐나다라는 나라가 우리나라에 비해 역사도 매우 짧고 그저 영국의 식민지에 의해 참 순조롭게 태어난 나라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여기에도 참 많은 난관들이 있었고 그것을 잘 헤쳐나갔기에 지금의 캐나다가 존재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각설하고... 캐나다 연방국가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그냥 ..
Atlantic Colonies1848년 캐나다 각 식민지에 책임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각 식민지별 급속한 산업발달이 이루어진다. 동부 해안쪽의 4개의 식민지들 (흔히 Maritime Colonies 또는 Atlantic Colonies라고 부른다) 역시 각 자연환경에 맞게 발전이 진행된다. 비슷한 곳에 있기에 비슷한 산업이 발달할 것 같지만, Newfoundland는 주로 어업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Nova Scotia는 해운과 탄광이, Prince Edward Island는 비옥한 토지로 농업이 잘 발달되어있어다. 또한 New Brunswick은 광활한 땅덩어리에서 수백년간 자라난 소나무 군락을 활용한 벌목과 선박건조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캐나다에서 제작된 선박, 각..
식민지의 자치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 다시 1812년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1791년 Constitutional Act1774년 퀘벡 조약 체결과 그로 인한 미국의 독립전쟁을 치른 후 1791년 Constitutional Act에 의해 퀘벡주는 다시 분리되었다. 영국계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Upper Canada, 그리고 프랑스계 이주민들이 많이 Lower Canada로.. 그리고 이 때부터 영국은 자신들의 캐나다 내 식민지들, 즉 British North America의 각 식민지에 부총독Lieutenant Governor을 입명하고, 이들에 의해 자치 정부, 의회를 꾸리도록 한다. 이 당시 영국의 캐나다 내 식민지를 살펴보면 British Colony에는 Upper Canada(온타리오), Low..
First Nations의 반란캐나다 땅이 영국의 통치 아래 놓이면서 당연히 프랑스계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사람들, 바로 First Nations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을 도와 프랑스와 전쟁을 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First Nations은 프랑스 편에서 영국에 대항해서 싸웠다. 영국의 통치 아래 들어가면서 First Nations은 모피 거래도 더 불합리한 가격에 할 수 밖에 없었고, 영국 이민자들이 사기를 치더라도 법률적 보호를 받기 힘들었다. 특히 사냥과 전쟁에 중요한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이런 불합리한 처우조건은 결국 화를 불러 일으킨다. 오타와 지역의 First Nation 지도자인 폰티악 Pontiac (우리에게는 GM의 자동차 브랜드로..
영국의 캐나다 내 식민지 확대프랑스에서도 식민지 개척에 관심이 많았지만 프랑스보다 더 식민지 확장에 심혈을 기울인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이 당시 영국은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업적을 이루어낸 엘리자베스1세 여왕에 의해 통치되던 때다. 스페인 무적함대까지 격파하며 식민지 시대를 연 장본인 답게 재위 시절인 1583년에는 탐험가 험프리 길버트가 캐나다 뉴브런스윅 New Brunswick 주, Saint John 지역에 북미 최초의 영국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이후 1584년에는 길버트의 이복형제인 월터롤리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섬 (버지니아)에 식민지를 세우게 된다. (1600년에는 인도에 동인도회사까지 설립한다.) 또한 1610년 탐험가 허드슨 Hudson이 캐나다 북동부 지역을 항해하면서 빙하로 둘러싸인..
바이킹족의 첫 접촉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캐나다 땅에 유럽인들이 처음 온 것은 약 1000년 경에 바이킹족이었다. 흔히 우리들의 머리 속에 있는 바이킹들은 매우 잔인하고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하지만 이 당시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에서는 어느 정도 호전성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바이킹족들은 아주 훌륭한 무역업자였고, 새로운 땅을 찾아 많이 나섰다. 그렇게해서 아이슬란드를 발견, 정착하기도 하고, 그 옆에 있는 그린란드와 다시 더 서쪽으로 가서 지금의 뉴펀들랜드 지역까지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바이킹족들의 이 역사는 주로 이야기에 의해 구전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실제 유적지와 유물을 통해 바이킹족 이 때 실제로 캐나다 땅에 있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신대륙 탐험 붐과 존캐벗..